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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사당(祠堂)이 필요한 시기-김태회

 

추모공간이란 “2019년 발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죽은 자를 매개체로 하는 산 자들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용어 또한 사체를 매장하거니 화장하는 장소를 지칭하는 말에서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과거 죽은 이들의 생애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종의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중개적 공간으로, 통곡의 장소이기보다는 여유의 장소로써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모공간은 거시적으로 보면 충혼탑, 국립묘지와 같은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거나,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공공시설 등도 있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의 선조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묻혀있는 개인 또는 공원묘지 등이 있다. 어찌 보면 추모공원이란 범국가적 의미와 더불어 일상적 공간으로의 의미도 지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Memorial Space, 엄준식 경상국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프랑스 건축사가 쓴 2021년 7월호 서울건축사신문 참조)

사전에 祠堂(사당)이란 조상의 神主(신주)를 모셔 놓은 집을 가리킨다. 家廟(가묘:한 집안의 사당), 사당 집, 祠宇(사우)도 비슷한 뜻이다.

왜 이 말을 유별나게 꺼냈냐 하면 다른 것은 제외하고 묘소, 봉안시설과 같은 일상적인 실재의 추모공간을 아무리 크게 수없이 써도 티가 안 나는 사이버(Siber)공간으로 이동하여 공간을 확보·이용하자는 것이다. 이름 하여 ‘사이버 사당(더 좋은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이라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오래도록 이어져오던 전통적인 매장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90%가 넘는 화장으로 바뀌면서 자연장과 납골 봉안 등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된다.’는 기대로 ‘우주장’까지 거론되면서 극히 일부에서 이행되고 있다. 여기서는 고인이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모실 것인가는 거론치 않고 추모공간과 형식에 대하여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제사 때 조상이 집으로 찾아온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제사상 뒤 병풍에 神位(신위)를 써서 모시거나 신위함에 넣어 모신다. 또한 어르신들은 조상님이 오신다고 불을 훤히 밝히고 대문을 꼭 열어놓으셨다.

요즘은 고인에 대한 추모의 형식이 간소화 하는 등 천태만상이다. 그 중 하나가 기제사를 지내는 대신 봄이나 가을에 날짜를 정하여 자손들이 모여 추모한 후 음식을 나누면서 안부를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는 집안이 많아졌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의 경우는 여행을 가서 현지에서 나름대로 추모하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외국 등 여행지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님이 어떻게 찾아오시냐?’고 물으면 ‘귀신 같이 찾아오시니 염려 말라’고 우스개를 하는 여유도 갖는다.

필자가 고향이라고 찾는 곳은 ‘내 고향 용상골’이라는 글에서 쓴 것과 같이 파주시 월롱면 용상골이다. 거기에는 장자인 형님(89세)댁과 나의 사촌 형님(92세)댁이 있고, 조상 산소가 선산에 5대조까지 모셔져 있다. 사촌 형님이 종손이니 종손 댁에서 제사도 차례도 지내왔다. 그런데 제사는 고조부, 고조모,증조부, 증조모, 조부, 조모, 부(백부), 모(백모) 이렇게 지내다가 언젠가부터 고조부+고조모, 증조부+증조모, 조부+조모, 부+모(백부+백모) 이렇게 합해서 지내기 시작하더니 그 휫수를 확 줄이고 최근에는 명절 차례마저 지내지 않고 있다. 조부의 둘째 자식인 내 부모에 대한 제사도 올해부터는 슬그머니 부와 모를 합쳐서 아버지 기일에 지낸다. 이는 대부분 여성들의 불만 때문으로 알고 있다. 사실 종가 댁은 제사 날이 많다. 그래서 조상을 모시라고 그에 상당한 재산을 종가에 주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일리 있는 물음이다.

벌초하는 걸 보면 5대조 아래 자손들이 모여 행하여야 하는데 종손 자손 둘과 방계 자손 중 서너 명이 하고 있어 어떤 때는 어느 산소는 산소와 관련한 직계 자손이 오지 않아 그대로 방치할 때도 있다. 물론 다른 날 그 자손이 와서 벌초를 한다. 모양새가 좋을 리 없다.

지난 10월 12일은 바로 아버지 기일이자 어머니 기일이 되는 날이다. 아내는 제사 음식을 장만하느라 큰집에 먼저 들어가고 나는 저녁에 들어갔다. 정해진 제례시간은 없다. 과거에는 자정이 되어서야 지내다가 직장생활 하는 자손들을 위하여 초저녁에 지내고 저녁을 먹은 후 서둘러 헤어지곤 했다. 지난 번 손녀가 자기의 뿌리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어 제사에 관한 여러 가지 기본 사항과 씨족계보도를 정리하여 그걸 가지고 들어가 제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내 큰아들과 제 아들(손자)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언짢지 않을 수 없었다. 제례에 참석해야 하는 직계자손이라야 남성만 참석하더라도 11명이어야 하는데 고인의 4형제 중 3형제와 손 2명으로 5명이 전부다. 그 정도면 괜찮은가 조촐한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것 이하였다.

歲次 甲辰九月庚子朔十一日庚戌 孝子ㅇㅇ

敢昭告于

顯考學生 歲序遷易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謹以 淸酌庶羞 恭伸 奠獻 尙

 

이렇게만 써 놓으면 뜻은 고사하고 겨우 읽을까 말까한다. 그래서 뜻도 번역해 본다.

세월이 흘러

갑진년 9월 11일 경술일에 아들 ㅇㅇ는

부모님께 삼가 고합니다.

해가 바뀌고 돌아가신 날이 다가오니 지난 옛일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어버이의 은혜가 하늘보다 높나이다.

삼가 약주와 여러 가지 음식을 정성껏 차렸아오니

약소하나마 기꺼이 받아주옵소서.

 

사실 필자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위와 같은 축문을 수 없이 반복하여 읽고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뜻을 곰곰 따져보지도 않았다. 그냥 음식과 술을 마련했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으로만 여겨왔다. 이런 걸 할머니가 계신 어릴 때(할아버지는 뵙지 못함)부터 들어왔고, 손자가 있는 지금까지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지방(紙榜: 종잇조각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神主(신주))도 마찬가지다.

지난 제사에도 또 반복했다. 나는 축관(축을 읽는 사람)이 되어 독축(축을 읽음)을 해 온 사람도 이럴진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얼 알겠는가. 더욱이 요즘 젊은이들은 거의 모를 것이다. 그러니 이건 이미 우리의 언어가 아니다. 과연 이렇게 지속하는 게 괜찮은 건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제사에 큰 아들과 손자가 오지 않았다고 기분이 나빴던 것도, 작은 아들이 절 꾸벅하고 저녁도 먹지 않고 그냥 삥 하니 제 볼일 보러 가버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벌써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음복주 한 잔하고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되짚어본다. 금융거래에 있어 현금, 카드, 온라인송금, Q코드 결제 등 다양한 결제 수단이 있듯 나름대로 축문을 짓든 시를 지어 바치든 누구나 알기 쉬운 방법을 택하여 추모하면 그만이 아닐까. 불콰한 김에 이제는 방향을 확 바꿔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나만 이런 제례행위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닌가?

필자의 선산은 월롱산 자락의 끝 쪽으로 마을과 인접해 있고 최근에는 솥우물에서부터 등산로를 개설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선산이라고는 하지만 사촌 형님 개인 명의로 있다가 그 아들인 종질 앞으로 이전 등기가 되어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선산에는 5대조와 그의 아래 자손이 세 군데로 나뉘어져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묘지를 한 군데로 옮겨 조성해야겠다고 하여 불협화음이 일었던 적이 있다. 아마 어느 업자가 전원주택지로 적격이어서 자꾸 꼬드기는 모양이다. 선산이지만 개인 명의로 있으니 관계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자손들의 행태들에 조상님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 이런 글도 써 봤다.

선산

내가 마련한 땅

한 뼘 귀퉁이에 편히 쉬고자 하나

스스로 애도 쓰지 않은 너희들이

선잠마저 깨우는구나!

 

그래서 제사 등 조상숭배라고 할까 추모의 공간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전통 유교적 제례방식도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본다. 제사나 차례라는 명분으로 친척이 만나 음식을 나누면서 고인을 추모도 하고 산 자들의 안부를 교환하는 자리를 갖는 것은 우리의 순기능적 문화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유교적 제례방식이 너무 형식적이고 불합리한 점들이 많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현재를 사는 사람들도 조상을 모시는데 의무감으로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을 갖지 않고 장례 추모양식을 거부감 없이 바꾸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사이버 사당(하늘 공간)을 개설하여 추모공간을 확보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공간설계, 활용방법, 관리 등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꾸미고 활용하면 된다. 이 공간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자와 협의하여 이행해야겠지만 현대인에게 맞는 경제적, 시간적 측면 등에서 훨씬 자유롭고 유연한 공간이 될 것이다. 운영자 측에서는 공간설계나 활용방법 등의 다양한 모형을 제시하는 등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다. 공간설계시 제단(왕좌, 꽃, 구름 등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을 주기적으로 바꾸어 주는 등 유연한 운영방식도 있을 수 있다. 공간설계, 활용방법과 함께 추모제 미리 알리기 등도 소홀히 해서는 알 될 사항이다.

물론 이와 같은 추모공간이 아닌 기존의 묘소나 여러 가지 봉안시설, 충혼탑 등에서 추모하는 것은 그대로의 의미가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이며, 이와 함께 우주장과 사이버 사당과 같은 추모 시스템이 연결된 새로운 모형이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회 향토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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