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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문으로 목숨을 내던진 윤락여성들

버스 창문으로 목숨을 내던진 윤락여성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0화-

 

1979년 초가을 밤 11시경, 관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윤락 여성을 단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마이크로버스가 속도를 줄이는 틈을 이용해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던 윤락 여성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단속공무원들도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지만 피곤하여 조는 바람에 뛰어내린 사실을 몰랐다. 운전기사 역시, 버스 안의 불을 끄고 운전을 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고 하였다. 윤락여성 포주가 뒤따라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군청 숙직실에 신고한 것이었다.

그날따라 군청에서도 큰 사건이 발생해 있었다. 임진강 초평도 모래를 채취하는 허가과정에서 공무원이 금품을 받았다는 정보를 누군가 중앙수사본부에 투서하였다. 그 일로 한 달 전부터 중앙수사본부에서 내사하여 군수, 건설과장, 관리계장, 실무자들이 동시에 연행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군수와 직원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과장 몇 명과 관사에서 식사를 하며 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던 중에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즉시 단속반장으로 간 사회과 복지계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발생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속인원을 확인했더니, 11명을 직업 보도소에 인계했다는 것이었다.

계장을 군청으로 나오도록 지시하고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사실을 물었다. 그 또한, 전혀 몰랐다고 했다. 직업 보도소에 인계한 인원을 확인했더니, 열 명이라고 했다. 사실, 스물한 명을 단속하였는데, 옛날부터 한눈을 파는 사이에 윤락여성이 도망을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인계 인수인원을 그날의 단속인원으로 처리하는 것이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었다. 단속코스는 문산에서 시작하여, 적성, 법원, 주내의 순이었다. 관사에 같이 있었던 과장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문산 방향과 주내 방향으로 추락 인원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직업보도소에서 인계한 인원 수와 계장과 운전수의 인원 수가 다르기 때문에 해당 단속 읍·면장에게 혹시, 관내 병원에 11시경 젊은 여자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토록 하였다. 그리고 현장에 확인을 나간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부상자들은 도립병원에 입원시키고, 사망자 세 명은 영안실에 입실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더라도 단속인원 숫자가 맞지 않았다.

차량에서 뛰어내려 앞니가 부러지는 등의 안면부상을 입었으나, 택시를 잡아타고 문산 삼성병원에 입원하였다는 문산읍장의 보고가 있어, 단속인원 숫자를 인계인원 11명 사망·부상자 6명으로 총 17명으로 확인했다.

밤새도록 현황과 대책 등 도지사에게 보고할 자료를 만들고 새벽같이 지사관사에 가서 보고를 하였다. 사망자 세 명은 1인당 200만 원을 지급하고 부상자는 치료비만 지원한다는 대책을 마련했다. 부지사는 사망자 200만 원은 많으니 100만 원 정도만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망자의 보상을 호프만식으로 따지면 810만 원이 되기 때문에 100만 원은 턱없이 적습니다. 200만 원도 적지만 잘 설득하면 될 것도 같습니다. 자금은 예비비에서 지불토록 할 것이며, 소송을 제기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각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도에 보고를 마치고 돌아와 부상자들의 치료가 도립병원에서 불가능하거나, 서울병원으로 가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서울병원으로 이송 조치했다. 영안실의 사망자는 노천에 천막을 치고 조를 편성하여 교대 근무토록 하였다. 유족이 왔을 때, 군청에서 성의껏 잘 처리하여 주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원만하게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망자의 신원을 알 수 없어 경찰서에 지문감식을 의뢰하여 신원이 확인되면, 직원을 현지에 보내 사망자의 가족에게 통보하였다. 부모의 이사로 일부는 경북 안동까지 찾아가 알리기도 하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검사의 지시를 받아 일산 공원묘지에 안장시켰다. 사망자의 유족들은 결손가정에서 자라 가출한 자식이 대부분이어서 200만 원의 보상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 여겼는지 항의가 없었다.

보상금을 주면서“형사, 민사상 하등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으려고 하니, 한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 유족은 거부했다.“하등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로 문구를 바꾸어 각서를 받았지만 나중에 브로커가 끼어들었고, 변호사를 통해 보상청구를 해왔다. 재판결과 각서의 효력이 인정되어 승소하는 것으로 윤락여성 사망에 따른 보상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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