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에서 문산방향으로 가다가 오두산전망대 근처 파주NFC(국가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위쪽으로 한식 목조 기와 건물이 길게 늘어진 곳이 보인다. 이 곳은 고려의 태조왕건과 고려역사 475년의 충신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게 될 고려 통일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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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를 통행하면서 가끔 한식 건물에 대하여 궁금해 하였다가 최근에 공사가 마무리 되어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장마가 끝나고 해가 잠깐 비추는 지난 8월 6일에 통일대전을 찾았다.
트레이닝 센터를 지나 좌측으로 2차선 길을 약간 올라가 차를 주차하고 통일대전을 바라보니 먼저 없었던 하얀 휀스가 설치되어 있고 정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무작정 달려온 통일대전의 답사를 포기하고 돌아 가려다가 고려선양회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달 8월 30일에 준공식을 갖기 위해서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후문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자동차를 몰았다.
파주NFC 뒷길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가다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위즈호텔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콘크리이트 포장된 경사길을 올라가 후문으로 들어갔다. 정전은 새롭게 단청되어 화려하였고 경내에서 방송시설 공사를 하고 있는지 가요가 경내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전은 단층이면서 3층 정도의 높이로 정면9칸, 축면5칸(31.20M ×16.8M)으로 525㎡ 면적규모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내부는 제례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외관은 상당히 웅장한 느낌을 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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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는 고려대의 34대의 왕들을 모시는 위패가 2대왕 혜종부터 마지막 공민왕이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배치되었으며 정중앙에는 태조인 왕건의 위패와 영정이 설치될 빈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전 좌우에는 (재) 고려선양회에서 회원 109문중에서 신청한 충신과 공신 195위의 위패를 배향해 놓았다. 당초에는 내삼문 좌우에 있는 충신각과 공신각에 위패를 배향키로 하였으나 그 곳에는 고려와 관련된 유물 등의 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 배향 장소를 변경하였다고 한다.
고려는 918년 6월 태봉국의 시중이었던 왕건이 황제인 궁예를 축출하고 홍유,신숭겸,배현경,복지겸의 추대를 받아 고려의 건국시조가 되었으며 후삼국 체제로 나누어져 있던 국가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여 호족세력의 통합정책과 4대 광종의 활약으로 5백년의 고려역사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역사를 갖는 고려는 그 동안 남북대치 상황에서 거론되지 않다가 최근에 고려시대 때 성(姓)을 받은 124개 문중(개성 왕씨, 개국공신(신숭겸)을 낸 평산신씨· 포은(정몽주)의 연일정씨 ·강감찬 장군과 강민첨 장군, 공목공(휘 시) 제위를 배출한 진주강씨)이 모여 고려역사 선양회라는 사단법인을 구성하여 고려통일대전 건립 사업을 착수하게 되었다.
고려통일대전은 고려의 민족통일 정신과 역사를 재현하기 위하여 1995년부터 사단법인 고려선양회(회장장 차화준)에서 정부지원 및 자부담 등 전체 167억원의 사업비로 정전과 충신각, 공신각 등의 건물을 고려시대 양식에 맞추어 건축하였다.
고려통일대전 부지는 1991년부터 조성되던 통일동산 부지중 탄현면 성동리 684번지(파주시 소유) 중앙공원 부지에 41,200㎡를 협조받아 1995년 12월부터 토목공사를 시작하였으며, 2002년 충신각, 공신각 등을 완공하였고, 2004년도 경기도에서 30억원을 지원받아 정전과 강당을 2006년 12월에 완공하였다.
정전은 준공되었지만 부대시설인 신도, 담장, 내부단청 등의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 부족한 예산 16억원 가량을 경기도에 요청한 상태이고, 그 이외에 고려 역사관 건립에 140억원의 소요사업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고려통일대전 건립을 위하여 많은 예산이 소요되나 재정적 기반이 취약한 고려선양회에서는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지원을 통하여 건립하다보니 10여년이 지나서야 고려통일대전의 핵심인 정전을 준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은 장기간의 사업임에도 노익장의 노련함과 추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고려선양회 차화준(경제기획원차관보, 14대국회위원, 연안차씨종친회회장)총재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고려가 해냈습니다. 요즘의 햇볕정책도 따지고 보면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난립한 호족세력의 통합을 위해 실시한 포용정책의 정신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앞으로 언젠가 이룰 남북통일과 고려의 삼한통합과는 일맥상통한다”고 주장 하고 있다.
또한 고려역사선양회는 “박정희 대통령 때 이충무공과 세종대왕 헌창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등 그동안 역대정권은 신라·백제·조선조 문화권 복원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실시해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역사의 허리인 고려조 475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표상사업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지향한다면 자주통일을 이룬 고려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역설했다.
고려선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려역사관은 건평 6,048㎡, 지상 2층 규모로 통일과 화합, 자주를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한반도 단일국가를 이룩한 고려의 건국과정과 이념, 대외교류, 시련극복 등을 다루는 역사관과 고려시대의 사상과 학술, 풍속 등을 전시하는 생활문화관으로 나누어 각종 유물·유품·고문헌을 비치할 것이며 그것을 형상화한 모형도·초상화·모조품·사진·도표 등이 전시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이밖에 고려사연구소, 고려문화재연구소 등 부속 기구를 설치하여 고려사 연구의 산실로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정전에서 남쪽 아래에는 전사청이 있는데 제사때 음식과 제기를 준비하는 곳으로 보통은 수복방이라고도 한다. 수복방으로 내려가면 좌우로 길게 늘어선 공신각과 충신각이있다. 공신각과 충신각이 각각 15칸씩으로 중간에 내삼문까지 포함하면 70여m가 길이로 내부 폭은 2칸으로 3.6m가 된다.내삼문은 통일대전의 입구로서 트레이닝센터 방향의 정문에서 40도 가량의 경사지에 화강석 계단 30여m가 연결되어 있어 통일대전의 웅장한 모습을 한층 더 해 주고 있다.
이 곳에 도착한지 1시간도 안된 짧은 시간에 통일대전을 모두 볼 수 있었지만 화강석 계단과 정전의 높은 중층규모를 보면서 고려의 오랜역사와 흥망성쇠를 느낄 수 있었다. 고려의 역사 중심지는 북한에 위치한 개성이나 평양일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자신이 한국의 정통성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또 현재를 위해서 백성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기만하는 것보다는 미래를 위한 역사의 복원은 우리 민족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장기간의 공사로 곳곳에 손이 가야할 일이 많은 사업이지만, 앞으로 이 곳이 남한에서의 찬란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개발된다면 통일동산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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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에 가렸던 햇살이 따가워 지면서 서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통일전망대가 전통한옥의 기와에 걸려 풍경이 아름다워 보일때 통일대전 아래쪽에 국가대표트레이닝 센터를 바라보면서 남북한 선수가 한 몸이되어 연습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또한 햇살이 통일동산 주차장 주변을 조명하면서 우뚝 솟은 위즈호텔과 많은 모텔들을 눈에 띄게한다. 고려의 통일역사를 위해 세워지는 이 곳 주위에 앞으로 찿을 방문객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후손들의 깊은 뜻에 감명 받을 수 밖에 없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고려통일대전 건립이 한반도를 빠른 시간 안에 통일 시키는 전초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 2007.8.7, 이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