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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민을 위한 쓰레기소각장 건설-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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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민을 위한 쓰레기소각장 건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15화-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부수적으로 발생되는 것은 많은 양의 쓰레기다. 인구가 적을 때에는 쓰레기를 산이나 들의 깊은 계곡에 매립하거나 노천에서 소각해 왔다.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 폐수, 분뇨, 음식물쓰레기, 가축폐수 등 환경오염의 주범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깨끗한 환경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 파주시는 1972년, 통일로 주변 정비사업을 할 때, 주민 이주대책의 일환으로 문산읍 문산리에 조립식 주공아파트를 최초로 지었다. 그리고 분뇨처리시설 예산을 요구하여 내포리 임월교 옆에 아무런 정화시설도 없이 원시적으로 콘크리트 탱크만을 건설하여 분뇨를 보관하였다가 부식이 되면 농경지에 살포토록 하였다. 그러나 살포할 곳이 없어 활용하지 못하였고 정화시설이 없는 콘크리트 분뇨탱크는 현재까지 탱크 속에 분뇨가 꽉 차 있어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었다.

1973년, 부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파주읍 봉암리(송강교근처)에 분뇨처리 시설만을 건설하고 악취제거 시설을 하지 못해 농사짓는 농민과 주민의 반발이 심했으나 지금은 위생처리장의 면적을 확장하면서 음식물쓰레기, 가축폐수, 악취제거 등의 시설을 추가 보완하여 종합 위생처리장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쓰레기 처리문제는 자체 해결이 어려워 인천에 있는 수도권매립지로 운반하지 않으면 처리할 곳이 없었다. 그것도 분리수거를 잘못하면 거부되기 때문에 다시 싣고 와서 재분리를 하여 운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일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래서 우리 시에 쓰레기소각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소각장 적지 세 곳을 우선 선정하였다.

첫 번째는 문산읍 이천리에서 파평면 마산리로 가는 마을과 떨어진 곳을 선정하였고, 두 번째는 금촌3동 야동동(자연부락 두문동)에서 월롱산 금승리 고개 넘기 전에 있는 우측의 평평한 임야, 세 번째로는 탄현면 낙하리와 문산읍 내포리 사이 구릉지에 문산읍의 쓰레기 매립지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낙하리를 선정했다.

위 세 장소 중, 어느 곳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나는 고민했다. 어느 곳을 택하든 주민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교통 접근성이 좋고 주민을 설득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는 곳을 선택해야 했다. 선택방법은 시청에서 일방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시민대표가 선정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읍·면·동장에게 대표자 두 명씩을 선발 보고토록 하였다. 선발된 스물두 명을 버스에 태우고 후보지 세 곳을 확인시킨 후, 적지를 무기명 투표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소각장 건립 장소를 선정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낙하리 주민들이었다. 주민대표가 읍·면·동 대표들과 같이 버스에 동승하여 현지 확인을 한 후, 투표한 결과 낙하리가 100% 찬성으로 선정된 것

이다.

낙하리 주민들은 즉시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청 직원이나 설계를 위한 측량사들이 소각장으로 선정된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소각장 건설 예정지구 입구에 현수막을 내걸고 천막을 쳤다. 주민들이 교대로 그곳을 지키면서 라면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반대투쟁에 들어갔다.

시에서는 낙하리 주민이 원하는 숙원사업은 모두 해결해 주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파주시민 전체의 문제해결을 위해 낙하리 주민들이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되었기에 무엇이든 주민이 요구하는 것은 지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무조건 반대했다.

시에서는 조급하게 사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주민을 설득하기로 하였다. 이칠용 면장과 박헌재 면장, 이춘기 환경과장이 자주 주민들을 만나 설득했다. 나도 출장 중에 그곳을 들러 주민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시의 방침을 설명하고 시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다.

약 1개월이 지나도록 시의 방침에 변함이 없자, 주민의 의견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시에서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낙하리 주민들에게 일본의 쓰레기소각장을 견학하고 와서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의했다. 견학할 사람은 인원수에 관계없이 선정하라고 했다. 반대투쟁위원회에서는 회의를 개최하여 견학을 가기로 결정하고 7명을 선정해서 통보해 왔다. 이에 부녀회원들이“왜, 남자만 가느냐? 우리도 같이 가야한다.”고 항의했다. 그래서 남자 7명, 부녀회원 7명을 시청직원이 인솔하여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소각장을 4박 5일로 견학토록 했다.

일본의 소각장은 해변에도 있지만, 주택가 중심부에도 있었다. 소각장에서 나오는 폐열을 수영장과 노인회관의 냉·난방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택 중심가의 소각장은 건설할 때는 도시 변두리에 있었으나, 도시가 커지면서 그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런 시설들이 주민편의를 제공하여 주민생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눈으로 확인했다.

일본의 소각장을 견학하고 온 낙하리 주민은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 시에서는 낙하리 주민의 숙원사업을 역으로 제시했다.

첫째, 낙하리 마을 안길을 2차선으로 확대, 포장해 준다.

둘째, 오금리 벌판의 낮은 논은 복토를 하여 침수를 방지하도록 해준다.

셋째, 쓰레기장 운영 시, 필요한 인원은 낙하리 주민을 우선 채용한다.

넷째, 쓰레기 분리수거 검사 기능을 마을 주민이 담당한다.

다섯째, 쓰레기 수거 수수료 3%를 마을 공동기금으로 조성한다.

위 의견에 대해 마을총회의 결의를 거처 통보해 달라고 했다. 마을총회에서는 시의 안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해 지루했던 반대투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날 주민들은 농성을 하던 천막을 철거했다. 그리고 하루에 100M/T 규모의 소각장을 위한 측량과 토지보상 등의 사업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곧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었다. 낙하리 주민의 반대투쟁이 해결되기를 기다렸던 내포리 주민들이 소각장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대표들이 시청을 찾아와 항의 민원을 야기했다. 소각장의 위치가 서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철 서북풍이 불면 내포 1·2·3리 쪽으로 암 발생 물질인 다이옥신이 날아오기 때문에 낙하리 주민의 피해보다 내포리 주민이 더 많은 피해를 본다는 내용이었다.

다이옥신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부에서 규정한 배출허용량 이하로 최신형 시설을 할 것이며 내포리는 소각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이옥신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투쟁위원들은 이미 환경단체에 가서 다이옥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온 터라 문제를 제기하며 주민대표들이 세네 명씩 와서 소각장 건설 반대라는 단체행동을 벌였다.

시에서 다이옥신 배출을 정부규정 이하의 시설로 설치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한 주민의 요구조건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했으나, 그 조건은 말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라고 했다. 오랜 시간동안 옥신각신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투쟁위원들은“시의 말을 들으면 우리들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주민들에게 시의 의견을 이야기하면 어용이라고 우리가 지탄을 받는다.”고 했다.

어느 날, 반대투쟁위원장과 위원들이 찾아와서 소각장 문제도 상의할 겸 환경과장과 같이 저녁식사를 같이하면 좋겠다 하여 승낙했다. 임진강변에 있는 지중해식당에서 오후 5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갔다.

우리가 도착하자, 반대투쟁위원장이 대기하고 있다가 먼저 양해를 구했다. 주민을 설득할 수 없어 식당 2층에 주민을 소집해 놓았으니 시장님과 환경과장님이 직접 주민을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주민들에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려던 참인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주민 100여명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소각장을 설치해야만 하는 이유와 주민들이 염려하는 다이옥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정부에서 허용하는 규정이하로 시설을 현대화하겠다는 것과 주민의 숙원사업을 전부 수용하겠다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믿을 수 없으니 소각장 건설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소각장은 낙하리 주민보다 내포리 주민의 피해가 더 많다고 했다. 바람이 항시 내포리 쪽으로 불고 특히 겨울철에는 서북풍이 불어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몽땅 내포리 쪽으로 날아오니,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내포리 주민이라고 항변했다.

다이옥신 문제로 주민들과 두 시간이 넘도록 찬반격론을 벌였다. 결론을 현장에서 내릴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어느 청년이 긴급동의라고 하면서“결론을 낼 수 없으니, 시장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소각장을 건설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로 해결이 됩니다.” 했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파주 전체의 환경을 위해서 소각장은 반드시 건설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그랬더니 거기에 모였던 주민 100여명은 일시에 “와!”소리치며“이런 회의를 왜 개최했느냐?”며 모두 일어나 나가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귀가 후에 추진위원들은“시장님이 검토해 보겠다고 주민을 달래야지 소각장을 건설하겠다고 틈도 없이 이야기를 하면 앞으로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 겁니까?”하고 투덜거렸다. 만일, 내가 거기서 검토해 보겠다고 여지를 주면, 주민들은 데모나 항의시위를 벌일 것이고 소각장 건설에 따른 강도 높은 항변을 이어갈 것이 뻔했다. 반대로 시장으로서 소각장 건설을 하겠다는 확고한 소신을 밝히면, 주민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 여길 것이고 그렇다면 숙원사업을 챙기는 쪽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터였다.

나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니 추진위원들에게 주민을 잘 설득하여 내포리 추진사업에 대한 내용을 협의해서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후, 내포리 주민들도 소각장 건설에 동의하고 내포리 주민의 숙원사업을 제시하였다.

첫째, 자유로를 이용하여 내포리로 오려면 당동1리를 거쳐 돌아오기 때문에 내포리 진입로를 자유로에서 바로 들어 올 수 있는 입구를 개통해 줄 것.

둘째, 내포 3리의 마을 안길을 2차선으로 마을 끝까지 확대, 포장해 줄 것.

셋째, 마을공동농산물직판매장을 건설해 줄 것.

이에 주민의 요구대로 약속을 하고 자유로에서 내포리로 들어오는 길을 개통하였고, 마을 안길은 2차선으로 확대, 포장했다. 마을공동농산물직판매장은 5억 원을 지원하여 자체적으로 해결토록 하였으나, 농산물판매장 부지매입 과정에서 주민 간의 갈등으로 인해 짓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에 5억 원은 환수되었다. 낙하리와 내포리 주민과의 어려운 문제는 그렇게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 일일 소각용량 100M/T의 소각장 본격 설계에 들어갔다. 소각장이 주민들이 볼 때에는 혐오시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별도 건물로 수영장, 헬스클럽, 스쿼시 등 운동시설과 식당 등을 포함하여 설계토록 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문산읍에서 쓰레기장으로 사용했던 부지는 매립하여 축구장과 테니스장으로 조성해 주민

이 직접 이용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여 소각장이 혐오시설이 아니고,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시설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에 이르렀다.

파주 소각장의 민원을 완전 해결하고 건설단계에 있는 것을 알고 도에서 김포군과 같이 쓰도록 소각장의 용량을 늘리되 추가 소요예산은 김포군에서 부담토록 조정하였다. 김포군의 100M/T을 더하여, 현재 200M/T의 수용능력을 가지고 있는 파주 소각장을 건설하였고 수영장은 너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제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축구장은 인조잔디를 깔아 활용하고 테니스장도 운영하여 혐오시설이 아니라 파주시민들이 애용하는 훌륭한 복지시설로 각광받고 있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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