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71화 (최종편) –
공직생활 45년 동안 파주에서 민선 7년, 공직생활 10년, 모두 17년을‘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파주’를 만들어 보겠다고 굳은 각오와 신념으로 앞만 보고 한 길만을 달려왔다. 파주 시정을 마치고 이제 나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길가의 돌 하나,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가 낯설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배어 있는‘영원한 나의 고향 파주’. 파주에서의 17년의 공직생활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 하나를 남기고 파주시장직을 끝으로 내 공직생활도 끝이 났다. 나의 파주시장직 퇴임사를 이곳에 옮긴다.
퇴 임 사
23만 파주시민 여러분! 그리고 천여 공직자 여러분!
저는 먼저 막중한 1대, 2대 민선시장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영광스럽게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신 23만 파주시민 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해 준 천여 파주시 공직자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위하여 참석해 주신 각급 기관장님, 사회단체장님과 특히 한·미친선회원인 미 공병여단 여단장님, 언론기관을 비롯한 내빈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200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그리도 바라던 16강을 뛰어넘어 4강까지 오른 것은 세계 축구사에 큰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온 국민이 남녀노소 없이 한마음이 되어“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것을 볼 때, 60억 세계인이 우리 민족의 잠재력과 결집된 힘과 애국심에 감탄했고 지도자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교훈으로 남겼습니다.
제가 1971년, 37세의 나이로 파주군 내무과장에서 부군수가 되어서 한 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한 통일로 주변 정비 사업이었습니다. 루핑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감자궤짝, 사과궤짝의 울타리를 블록벽돌로 바꾸었고, 상부 지시자의 성격에 따라 2~3회의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였습니다. 흉고직경 5㎝의 통일로에 심은 어린 은행나무들은 아름드리로 자라 지금은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촌의 조성과 2차에 걸친 대성동 마을의 재건축을 실시하였고, 자운서원 마을의 이전, 기지촌 정비사업, 새마을운동 등으로 파주 전역을 밤낮 가리지 않고 돌며 독촉과 격려로‘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을 불어넣었던 일들이 새삼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가을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 이른 봄부터 통일로의 코스모스를 가꾸던 일, 2차 통일로 주변 주택개량을 위해 정열을 바쳤던 모든 일들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역사적인 민선 지방자치가 출범하였던 1995년 7월 1일, 명예로운 초대 민선군수로 취임하였던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7년은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면서 파주의 발전을 위해 정열을 다 바쳐 뛰었던, 제 생애 최고의 영광과 보람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진실한 봉사와 깨끗한 행정, 푸른 환경과 밝은 사회, 살기 좋은 으뜸 파주를 만들어 나가는 데 시정 목표를 두고 파주를 쾌적한 전원과 문화, 관광의 자급도시로 가꾸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들이‘21세기 통일한국의 중심도시 건설’이라고 하는 큰 흐름 속에 하나씩 실현되어 가고 있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1996년 3월 1일 시 승격을 계기로 5대 권역별 개발구상이 담긴‘파주시 장기 도시기본계획’을 완성함으로써, 21세기 환경 친화적인 자족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은 가장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개발 측면에서 자유로, 통일로, 국도 37호, 국지도 56호선을 축으로 시 전역을 연결하는 53㎞의 연계도로망 건설과 운정·금촌지구 택지개발, 문산 도시의 항구적인 수방대책을 마련한 것을 비롯하여, 문발공단, 동양 제일의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글로벌 기업 모토로라 유치는 물론, 금승, 오산, 금파 등지에 산업단지가 그간 조성되었습니다. 첨단시스템을 갖춘 쓰레기소각장, 분뇨·축분 처리시설과 상수도 공급시설 확장, 하수종말처리장 등 환경 기초시설을 준공 또는 실시 설계를 완성함으로써 파주는 환경 친화적인 자족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었다고 봅니다.
시민복지 향상 측면에서 읍·면·동 단위로 설치된 각종 체육시설 및 공원을 비롯하여, 여성회관, 보건소, 장애인복지회관, 청소년문화의집 등 복지시설이 준공되었으며, 50여 년간 고향에 돌아가기를 꿈꾸던 장단 군민에게 진동면 동파리에 수복마을 60세대를 조성, 입주하였습니다. 자운서원, 반구정을 비롯한 46개소의 문화재가 정비되었고 칠중성, 혜음원사지, 임진강 적벽에 대한 지표조사 실시로 문화유산에 대한 장기적인 보존 대책이 마련되었습니다. 아울러 잊혀 가는 농경사회의 문화계승을 위하여, 파주 농요론 편집과 짚풀문화공예 경진대회를 개최하여 조상의 삶의 지혜와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고,‘율곡 문화제’를 전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행사내용을 다양화하였습니다.
경제개발 측면에서는 통일동산 내에 천연잔디 6면과, 인조잔디 1면의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 준공을 비롯하여, 15만 평의 헤이리예술촌, 8만 5000평의 태권도박물관, 탄현면 금승리에 세무전문대학 유치, 실내 스키돔 등 대형 사업들을 가시화시켰습니다. 분단의 현장이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 파주 유일의 관광 상품 개발과 장단콩 축제 및 장곡리 하나로 농산물 판매 센터 조성으로 농가의 소득 향상과 농산물 유통체계를 마련하였습니다.
임진각 옆 20만 평의 평화생태공원 조성 부지확보를 비롯하여, 도라산, 제3땅굴 관광개발 사업을 2002년 월드컵에 맞춰 준공하게 된 것은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기 좋은 으뜸 파주건설’을 위해 애썼던 지난 7년은 보람도 컸지만 시련과 고통도 많았습니다. 임진강 유역을 덮친 사상 유례가 없는 세 차례의 수해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더불어 가옥의 침수, 도로와 제방유실, 농경지 매몰과 수천 명의 이재민 발생 당시,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아픔이었습니다.
다행이 재난에 굴하지 않고 수재민 여러분들과 군경장병, 소방대원, 전국의 자원봉사자, 공무원들이 하나가 되어 단시일 내 응급복구를 마침으로써 위대한 파주시민의 역량을 보여 주셨지만, 그때의 고통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수해에 뒤이어 닥친 구제역은 상처받은 파주를 다시 한 번 가혹한 시련에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축산 농가는 눈물을 흘리며 애지중지하던 가축을 이웃에 병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무참히 살처분, 매몰하여야 했고 전 공무원들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하여 방역활동은 물론, 24시간 초소 근무를 하며 밤샘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시련이 있었기에 파주는 3448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어 항구적인 수해 예방시설을 갖출 수 있었고,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면서 파주의 행정은 전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재난대처 능력이 뛰어난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파주시가 축적한 이러한 위기관리능력은 21세기 통일시대를 준비해 가는데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외에도 시 전역에 걸친 변화와 개발의 물결을 타고 봇물 터지듯 넘쳐 나는 각계각층 시민들의 욕구와 집단행동은 시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양보와 절제를 통해 슬기롭게 해결해 나감으로써 성숙한 자치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파주시민 여러분!
파주는 기회의 땅이며 미래의 땅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개발이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구잡이로 이 땅을 훼손하면 더 이상 파주의 미래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파주의 미래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이 땅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꿈과 희망이 있고 누구나 살고 싶은 전원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파주시민 여러분께서 앞으로도 젊고 능력 있는 후임 이준원 시장을 도와 인내하고 협력하신다면, 개발과 보전이 조화를 이루는 전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파주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천여 파주시 공직자 여러분!
파주시 야동동 조그만 동네에서 촌부의 아들로 태어난 제가, 고향의 초대 민선시장을 역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58년 까까머리 총각으로 경기도청에 임시직으로 처음 들어와, 이제는 내일 모레면 백발의 고희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45년간의 공직생활 중 17년을 파주에서 일해 오면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걱정, 가물면 가물어서 걱정이었던 저는 1년 365일이 늘 긴장된 비상대기 상태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공직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공공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신성한 직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시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수해의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함께 눈물을 흘리던 모습들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또한 영태리 미군부대 폭발물 사건으로 한밤중에 주민을 대피시켜야 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공직자들은 두려움 없이 주민을 깨우기 위하여 뛰어들었고, 산불이 났을 때는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했었습니다. 다시는 파주에 이런 재난이 오지 않도록 눈 덮인 감악산에 올라 목이 터져라 소리치던 일들이, 이 순간 주마등같이 지나갑니다.
시장이 앞장을 서면‘섶을 지고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었던’여러분의 열정을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지나치게 여러분들의 희생만을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후회도 해봅니다. 지나친 강요였다면, 이 자리에서 그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빕니다.
특히, 오늘이 있기까지 저에게는 잊지 못할 분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물질이 아닌 건강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부모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대학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우리 형님과 새벽기차로 통학하는 시동생의 밥을 해 주시기 위해 밤잠을 설치시던 형수님, 그리고 우리 신혼생활에 용기와 희망을 주신 경기제사 주식회사 사장이신 이용기 처삼촌 내외분,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바로, 제 옆에 앉아 있는 나의 아내입니다. 아내로서, 선생님으로서, 어머니로서, 가정부로서 1인 4역의 어려움을 다 참아 가면서 그 곱디곱던 손이 바윗덩이가 되도록 저를 도왔으며, 아들딸을 잘 키워 냈습니다. 휴일도 없고, 밤낮도 없이 일할 때, 불평 한 마디 없이 참아 준 아내 이숙재 여사.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다는 말을 이 자리에서 전하고 싶습니다.
45년의 긴 공직여행을 마치고, 이제 당신의 품으로 돌아가니 잘 부탁합니다. 또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휴일을 반납해 가며 내조를 아끼지 않았던 공직자 가족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물밀듯이 밀려드는 개발의 압력 속에서도 러브호텔을 규제하였고, 4년 동안 아파트 사업 승인을 중단시킨 것은 오직 난개발을 막고 선 계획, 후 개발로 체계적인 도시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저만의 확고한 의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있었던 온갖 회유와 압력에도 굴하지 않은 것은 제 자신의 올바른 소신과 파주 발전의 꿈을 한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4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제가 이렇게 명예로운 공직생활을 마감할 수 있게 된 것은 공직자로서 흔들림 없는‘진실한 봉사’와‘깨끗한 행정’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자부합니다. 저는 오늘 후배 공직자들에게 제가 못 다 이룬‘전원, 문화, 관광 자급도시 파주’의 꿈을 꼭 실현시켜서 살기 좋은 파주를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기를 당부 드립니다.
23만 파주시민 여러분, 그리고 천여 산하 공직자 여러분!
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여일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던 공직자로서의 삶을 끝내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길가의 돌 하나,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이 배어 있는 나의 고향 파주를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제 자신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과 늘 친숙한 이웃으로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오늘 저의 퇴임식을 격려해 주시기 위해 참석해 주신 각계각층의 시민 여러분들과 공직자 여러분과, 내빈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영원히 감사합니다.
2002년 6월 29일 송 달 용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나는 파주인이다’ 목록으로 바로가기
편집후기
작년 4월 18일부터 매주 송달용 전 파주시장의 ‘나는 파주인 이다 ‘ 회고록을 연재하고 오늘 마지막편 71화를 게시하였다. 회고록은 전체 3부에 56개 내용으로 되어 있었으나 3부의 마지막 내용 중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은 스토리가 길어 나누어 게시하여 71화가 되었다.
1년 5개월간에 긴 여정이었다. 매주 월요일에 게재 한다는 원칙으로 주말에 편집 작업을 해왔다. 금년 초에 바쁜 일이 있어 딱 한 번 화요일에 게재한 기억이 새롭다.
‘나는 파주인 이다’ 회고록은 2015년 5월에 발간 되었다. 거의 4백쪽이나 되는 분량으로 저자가 공직 45년간의 경험을 관련 사진이나 자료를 포함하여 기록하였다. 이 회고록은 저자의 개인적인 기록이라고 볼 수 있지만 파주시정과 관련하여 공식가록에 남아 있지 않은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작년 4월 처음 ‘파주이야기’ 에 연재를 기획할 때에는 파주와 관련된 1부와 2부만을 게재할 려고 했다. 그러나 3부의 내용도 다수 파주와 관련된 내용이 있고, 저자의 공직생활 중에 경험이어서 전체를 게재하게 되었다.
회고록을 파주이야기에 게시하면서 파주시 역사에 필요한 자료로 생각하고 연재를 시작하였지만 매주 내용을 편집하면서 저자가 파주인으로서 지역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과거는 현재의 얼굴이다. 개인이나 국가도 늘 기록을 통하여 경험이나 과오를 반추해 보아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고록이 저자의 개인적인 기록일 수 있지만 파주가 활력있는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록이 될 것이다.
공무원들은 대체적으로 공직생활을 무난하면서도 안정적인 직업으로 생각하며 정년을 맞지만 저자는 ‘우보(牛步)’라는 호처럼 지역발전과 공직실현이라는 소신을 우직하게 보여준 공무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파주시 공무원과 지역 후배들에게 늘 귀감이 되시고 ‘파주이야기’에 회고록을 연재할 수 있도록 흔쾌히 수락해주신 송달용 전파주시장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드리며 회고록 자료파일을 제공해 주신 김정아 헵시바 도서출판 대표님에게도 이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파주이야기 편집자 이 기상-
One thought on “파주 시정(市政)을 마치고 떠나면서-71화 최종편-”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