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탄현면에 세무대학 들어서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17화-
어느 날, 서울에서 서울세무학원을 운영하는 송상엽 원장이 찾아와 파주시에 세무대학 설립이 가능하도록 지원해 달라고 했다.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파주의 숙원사업인 대학설립을, 스스로 찾아와 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역대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늘 대학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하였지만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대학을 설립하지 못한 것은 법적으로나 기반시설의 여건 조성이 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수도권 정비계획법에 의하면 대학이 인구집중 시설이므로 설립할 수 없고 또,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하여 군부대 동의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교통 등 취약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문대학은 설립이 가능하여 세무대학 설립에 관한 논의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대한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학원장에게 학교 설립 위치와 면적을 지적도에 표시하여 오라고 했다. 군부대와 사전협의를 한 후에 가능하다고 하면, 정식 동의안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장소는 탄현면 축현리 탄현중학교 쪽이었다. 야산이 가리고 있어 북한과 직접 보이지 않는 곳이다. 관할 부대가 101여단이어서 학교 위치를 표시한 도면을 가지고 101여단장을 방문하여 설명하고 사전 검토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101여단장은 도면을 검토하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정식으로 공문을 작성하여 군사동의를 요청했고 얼마 후, 군사동의가 부동의(不同意)로 통보되었다. 그 지역이 소대 집결지이기 때문에 부동의 라고 공문에 표시하여 왔다. 부동의 공문을 가지고 나는 여단장을 다시 방문했다. 나는 여단장에게 항의 비슷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소대 집결지는 진지도 아니고 전쟁 발발 시, 소대는 항상 이동하는 것이지 진지를 고정하여 방어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공문을 보내면, 대외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부동의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부동의를 할 때, 작전상 불가라고 하면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이해되고 오해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단장은 미안하다면서 이유야 어떻든 부동의된 동일한 곳에 재심의는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을 물색하여 오면 성심성의껏 검토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미 군부대 동의로 공장을 건축한 현 위치(탄현면 금승리)에 있는 공장을 매수하라고 하고 군부대 동의 공문을 보냈다. 그랬더니 즉시 동의가 왔다.
파주시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만족스럽고 뿌듯했다.
학교 진입로가 협소하여 새로운 진입로가 없으면 대학다운 대학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금승리에서 직접 들어가는 농지를 시비로 매수하여 진입로를 신설하는 한편,‘탄천교량(炭川橋梁)’은 마침 국토관리청에서 하천 개수사업을 하고 있어서 서울 국토관리청장을 만나 교량가설을 부탁하여 교량문제도 해결되었다.
도로는 2차선으로 개설하는데 가로수를 도로변으로 심으려 하니, 농민들이 나무 그늘 때문에 농사가 안 된다는 항의가 들어온다고 담당과장이 보고하였다. 가로수를 도로변에 심지 말고 도로 중앙에 심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벼농사에 지장도 없고 항의도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특색 있는 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지금 진입로의 가로수는 그렇게 중앙에 심어졌다. 후에, 농민의 동의를 얻어 도로 양쪽 변에 은행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완공을 보지 못한 채 퇴직했고 공사 지연으로 법정학교 개교일을 준수하느라 시청 직원들이 많은 고생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파주에 들어선 최초의 대학이 개교하게 된 것이 진심으로 기쁘고 웅지세무대학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
이곳에선 지금 많은 학생들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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