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에는 파평윤씨 마을이 없다.’ 이 말은 지난주 경기문화재단 민북조사팀과 인터뷰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글로 남기고 그 글을 오래 보존해야 한다. 이번 전시회는 그런 기억을 찾기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편집자 씀-
지난 12월 4일 파평면 행정복지센터가 개청되면서 파평도서관도 함께 개관되었다. 도서관 개관 기념으로 ‘파평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전시관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전시관은 도서관 전체 중 50㎡ 정도 규모로 한옥집의 사랑채처럼 꾸며져 파평면과 관련된 도서와 사진 등이 전시되어있다.
현 파평면 지역은 임진강과 인접한 지역으로 삼국시대 전기 당시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에 속해 있다가 삼국통일 후에는 파평현으로 개칭되었고 조선건국 후 1398년(태조7년) 서원군과 합하여 원평군이 되었다가 1459년(세조5년)에 파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옛 파평현 지역은 파평윤씨의 시조인 윤신달( 尹莘達 : 893(진성여왕 7)∼973(광종 24))이 출생한 곳이다. ‘파주(坡州)’라는 지명도 세조반정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세조부인 정희왕후(본관 파평, 윤번의 딸)의 본향인 파평현(坡平縣)의 ‘파(坡)’와 큰 고장이라 뜻의 ‘주(州)’ 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번 ‘파평을 기억하다’ 전시회도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수 많은 역사의 흔적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강 소개를 위해서 고문헌에 기록된 변계량(1369~1430)의 ‘ 임진강(臨津江) 나루에서 ‘의 시조와 임진강에서 거북선 훈련 하고 있다는 태종실록의 내용을 전시하였다.
임진강(臨津江) 나루에서 -변계량 (1369∼1430)-
갈대꽃 단풍잎 날 저문 강가에 / 蘆花楓葉暮江濱
두 척의 작은 배 빈번하게 오가는구나 / 兩箇扁舟渡水頻
모래밭의 백구는 그 누구와 친숙한가 / 沙上白鷗誰與狎
해마다 행인들이 무척이나 수심하네 / 年年愁殺往來人
임진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
임금이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 上過臨津渡, 觀龜船、倭船相戰之狀 上過臨津渡, 觀龜船、倭船相戰之狀 – 태종실록 25권 13년 계사(1413) 2월 5일
현재 문산읍 임진리에 있는 임진나루는 한양에서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배를 타고 도강해야 하는 지역으로 남쪽에는 진서문 있었다고 한다. 진서문은 임진나루에 설치하였던 조선시대 도성 방어용 관성(關城)인 진서관(鎭西關)의 성문이다. 조선 영조 31년(1755년)에 성문을 쌓고 현판을 ‘임벽루 진서문’이라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복원도는 신성철 파주시미술위원회 위원(평택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이 옛 문헌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당시의 임진나루와 진서문을 그림으로 재현한 것이다.>
파평면행복센터에서 동쪽 방향으로 있는 파평산은 해발 496m의 파주시 진산으로 임진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파평산은 옛 이름으로 미라산(彌羅山)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불리웠고 정상부근에는 파평윤씨의 시조 윤신달이 말을 훈련하던 치마대터와 고려 현종때 창건한 미타사가 있다고 소개 되어있다.
이와 더불어 파평산 아래 사찰인 미타사 부근 석벽에서 철분 성분의 샘물을 발견하자 위장병도 치료하고 산 아래로 보이는 임진강 경치도 즐길 겸해서 인근 각처에서 오는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는 1932년 5월 9일자 기사와 파평산에서 금파리 주민이 산삼을 채취하자 불로장생과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다는 1932년 8월 16일자 기사가 실린 매일신보 신문도 있다.
파평출신으로 서울대 국어학자인 이응백 교수의 수필집 중 ‘고향길’을 소개하였고 파주의 옛 지도와 50년대 이후의 마을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특별전으로는 파평도서관 김덕겸 주무관이 1990년대부터 수집보관하고 있는 파주시 관련 기념타올 2백여장 중에 준공과 관련된 기념타올도 전시되어있다.
이번 전시회는 지역 역사 자료가 턱 없이 부족한 현실에서도 나름대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만든 의미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고 운영하고 있는 김덕겸 파평도서관 담당 주무관은 전시회 관련 소감을 말했다.
“무엇보다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개관을 준비하면서 전시회 주제를 어떻게 구현할지를 정하고 관련 자료를 모으는 시간도 매우 촉박했습니다. 하지만 파평이라는 주제 선택과 확장성 측면에서는 갖 가지 자료가 풍부했기에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마을 아카이브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향토사와 생활사와 연결되어 있었고, 이 분야에 대하여 지식과 전문적 능력을 가진 몇 분들의 조언과 자료 기증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전시관을 구성하는데에도 재능있는 도서관 직원들의 도움이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것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이어서 김덕겸 주무관은 지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구성원들이 역사를 기록하고 수집하는 공동체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마을과 지역의 공동체 활동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개인주의 극복과 개인주의, 소외 같은 문제해결을 하고자 하는 활동이 주목을 받으면서 마을 활동을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활동 즉, 마을 아카이브 활동도 활발해 지고 있습니다. 파평도서관의 마을책장도 그러한 활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과거와 일상의 소중한 기억들을 주민과 함께 모으고 공유하면서 이웃과 지역 공통의 관심과 건강한 마을 정보교류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이야기와 생활사 구술 증언 등은 관련 자료기증 또는 공유 등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도움을 통해 함께해 나가야 할 작업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며 마을책장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끝으로 김덕겸 주무관은 앞으로 전시회 운영계획에 대하여도 말하였다.
“파평과 파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탐색하여 도서, 문서, 사진, 영상, 지도, 그림. 생활 물품 등 다양한 형태의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인물, 자연, 설화, 사건, 주민생활 등의 주제별 이야기로 만들어 파평도서관 마을책장에 소개할 계획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자료의 수집과 정리 보존이라는 도서관 고유의 역할을 다함과 동시에 지역의 고유하거나 상징적이며 증명할 수 있는 보존가치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지역자료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공유하고 이용할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도서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주 경기문화재단 민북조사팀과 인터뷰하면서 “파평에는 파평윤씨 집성촌이 왜 없냐?”는 질문을 필자가 받았지만 적당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의 기록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연결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파평면 지역은 현재 인구가 4천여명 정도로 이농현상이 심각한 지역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 주둔으로 경기가 활성화 되었던 곳이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지역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이슈 파주이야기 이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