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옹주는 조선시대 영조의 딸입니다. 그 묘지는 파주읍에 있는 군부대 영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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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옹주-
1727년,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영빈 이씨(暎嬪 李氏) 소생으로 태어났으며 사도세자에게는 친누나에 해당한다. 1731년(영조 7) 마마를 앓아 영조가 모든 형의 집행을 정지시켰다. 1738년(영조 14) 12세의 나이에 예조참판 박사정(朴師正)의 아들인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에게 하가하였는데, 옹주는 평소 영조의 총애를 받아 그 의물이 매우 성대하였으며, 혼례를 치른 후에도 남편과 함께 궐 안에서 생활하였다. 1748년 6월 24일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고 영조가 그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다.
영조는 화평옹주의 죽음을 슬퍼함이 지나치다고 신하들이 간하자, 노하여 그들을 파직시켰으며, 화평옹주의 장례를 성대히 치르게 하여 분묘를 만드는 데만도 수 개월이 소요되었다.[1] 화평옹주의 무덤은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에 있다. 1790년(정조 14)에 영조의 친필로 비문을 쓴 묘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