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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부속의 원조 파주

요즈음 구제역이 한창이라 소고기, 돼지고기 먹는다는고 마음 먹기가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나 80년대에는 회식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무공해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중 돼지부속은 한 시대의 뒷자락을 장식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그 당시의 기억을 찾아 정리해 보는것도 작은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80년대 파주사람들이 즐겨 찾던 돼지부속집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돼지 부속집은 조리읍 봉일천리, 금촌 시가지, 교하읍 읍사무소 앞 등에 지역별로 두세개 업소가 있었다. 그중 원조라 할 수 있는 곳은 조리읍 봉일천 시장에 장군집이라는 곳이다.

돼지부속은 돼지를 도축하고 일반상품으로 수요가 적은 껍데기, 막장,염통,갈매기살 등을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돼지의 고환과 생식기를 감춰 부르기 위한 이름이다.

이 당시에는 돼지갈비와 삽겹살을 구어 먹는게 일반적인 시절이다. 금촌역 앞 도로 주변에는 갈비집이 즐비하였다. 그러나 돼지 부속집은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가지 부위를 골고루 먹을 수 있어 인기가 있었다. 보통은 돼지부속 모듬으로 나오기도하고 특정 부위만 주문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생식기 부위의 독특한 맛과 호기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듬을 주문한다.

돼지부속 요리법도 업소마다 다르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번개탄에 석쇠를 얹어 구어 먹는 방법이 일반적이었고, 교하읍사무소 근처에 있던 부속집은 은박지 호일 위에 콩나물과 고추장 무침의 고기를 볶아서 먹는 방법도 있었다.

이런 돼지부속집이 파주에서 먼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6~70년대의 파주의 인구가 16만 정도로서 다른 지역보다 경제가 활성화 된 지역이다. 이 당시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서 인구 유입도 많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가 많은 탓에 육류 공급 수요도 많았다. 그 당시에는 냉장시설도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마다 도촉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도축장은 물이 풍부하고 오물처리가 잘되는 하천변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봉일천 장군집도 봉일천 시장과 도축장이 인근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일반 살코기는 정육점으로 공급되지만 간과 막창등과 내장은 헐 값으로 순대국집과 부속집으로 판매되었다. 이렇게 구입된 돼지부속은 음식점에서 손질되어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계층에게 값싸게 제공되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보인다.

2000년 초에 서울 사람 몇이 와서 돼지부속을 먹으면서 서울지역에서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까지도 지금의 돼지부속집 체인점이 발생하기 이전 이라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서민에게 사랑받던 돼지부속집이 2000년 후반부터 이름만 돼지부속집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당시부터는 돼지의 품질을 높이기 생식기를 거세하면서 돼지부속의 핵심적인 부분은 공급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생식기를 제외한 내장과 일부 살코기를 양념하여 판매하는 체인점 형식으로 돼지부속집이 많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돼지부속이라는 이름에 감추어진 이야기는 빛을 바래고 일반 고기집에서 새로운 부위를 싸게 먹어보는 음식점으로 바뀌고 있는것 같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

<2011. 1.9, 이기상>
보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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