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시의회 이기상 –
1987년은 ‘6.29 민주화 선언’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새롭게 태어난 시대이다. 유신 독재시대를 마감하고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켜 어중간하게 타협된 시국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가 태동되고 있었다.
이런 전환기에 나는 파주군청에서 공무원 회원 60여명을 모아 ‘파주가족 회보’ 발간을 주도하였다. 공무원을 시작한지 8년차 정도 되었지만 조직 전체가 권위적이고 주민보다는 공무원 조직을 지키려는 것을 보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이다.
이 당시에 파주군 공무원은 읍면직원을 포함해서 7백여명이었고 군수도 내무부에서 임명하는 시기였다. 공무원 조직 내부에는 군사문화가 잠재되어 있어 대화보다는 명령이 우선이었고 개선보다는 보신을 더 중요시 하는 시기였다. 이런 불합리한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무원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상시 책 읽기를 좋아 했고 학창 시절에는 몇 몇 친구와 습작하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살려 공무원에게 청내 소식과 개인적인 글을 실어 회지를 만들어 배부하면 의사소통 기회가 많아져 조직에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했다.
회지 발간을 위해 군청에 근무하는 지인들을 모아 발기인으로 구성하였다가 점차 읍면 직원까지 확대하여 1987년말 쯤에는 64명의 회원이 확보되었다. 회원들에게 원고를 모집하여 시, 수필, 주식소개 등의 내용을 요즘의 A4규격 4장의 분량으로 만든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파주가족’ 회지는 계간지로 분기에 1회 발간하는 계획으로 추진 되었다. 그러나 2, 3호를 발간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나타났다. 우선 회지 발간을 위한 원고가 부족해지자 게시할 글을 내가 대필 해주게 되었다. 의사소통을 많이 하기 위해 회지를 발간하려는 당초 취지를 벗어 난 행동이었다.
또 하나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는 발간 비용을 충당하기가 어려워 평상시 거래하는 인쇄업체에게 부탁하고 더 모자르는 비용은 자비를 부담하게 되므로서 계속 회지를 발간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세번째 회지를 발간하고는 소리 소문 없이 발간을 중단했다.
공무원 회보 발간은 20대 젊은 나이에 가장 큰 모험이었다. 원고 부족과 발간 비용의 부족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다른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흔치 않은 경험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파주가족 회보’를 폐간하고 10여년이 지난후 파주군이 파주시로 승격되던 1996년에는 새로운 차원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때는 하이텔이나 천리안이라는 PC통신이 한창이고 개인용 컴퓨터가 사무실에 도입되는 초기이었다.
이 시기는 앨빈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인 정보화 시대로 정보화 독점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지적되는 때이다. 또 PC 통신을 통해서 지역에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이때 시청에서 컴퓨터를 좋아하는 직원들과 기존에 농업기술센터에서 활동하는 모임을 통합하여 ‘셈틀회’라는 동호회를 조직했다. 한글이나 엑셀, 데이터베이스, 자료마을 등의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교육시켰고 PC 통신으로 청내 정보도 공유하면서 의사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셈틀회 또한 10여년 후에 PC가 일반화되면서 모임은 유명무실해 졌다. ‘셈틀회’ 초대 회장이었던 나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마지막 총회를 소집하여 공개적으로 해산 절차를 갖추었다. ‘셈틀회’를 공개적으로 해산한 것은 1988년에 ‘파주가족’ 회보 발행을 조용하게 중단했던 기억을 지우겠다는 생각이었다.
1988년 ‘파주가족회보’ 발행 중단후 나는 그 해 일반인이 운영하는 독서토론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독서토론회는 매달 같은 책을 읽고 주재자를 중심으로 토론하는 모임이다. 책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발언할 수가 있어 민주주의를 훈련하기는 가장 좋은 모임이었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독서 토론모임에서 아직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늘 공평하고 객관성을 가져야 하는 공무원으로서 책과 토론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주도했던 ‘파주가족 회보’ 발간과 ‘셈틀회’ 모임은 스스로의 소신을 실천했던 젊은 날의 기억이다. 우연하게 1988년에 발간했던 두번째 ‘파주가족 회보’를 지인에게 받게되어 퇴직을 앞두고 30년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