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모르냐?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54화-
1964년 4월 18일 여주군 공보실장에서 산업국 농무과로 발령이 났다. 농무과에는 농정계, 농사계, 가재계, 잠업계가 있었고 농지 분배가 완료되면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지정계(地政係)와 보상계가 편입되어 있었다. 지정계는 농지분배 후유증으로 민원이 많고 분쟁을 해결하는 소송을 담당하는 아주 골치 아픈 업무로 누구나 가기를 싫어하였다. 과장은 구차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지정계로 배치하여, 나는“좋습니다. 가겠습니다. 아무 불평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려운 민원의 해결 방향을 알 수 있고 소송업무를 통하여 이번 기회에 법을 공부하여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업무를 인수하고 2개월 정도 지났을까? 차명준 계장이 송주사가 국가 소송을 담당하라고 했다. 농지개혁법도 제대로 소화도 못하고 법원에 출두했다. 처음 출두한 나에게 판사는 언제 농지분배가 확정되느냐고 물었다.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진땀이 났다. 잘못 답변하면 더 창피를 당할 것 같아서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판사는 국가소송수행자가 그것도 모르면서 국가소송을 하느냐고 여러 방청객 앞에서 핀잔을 주는 것이다.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나의 얼굴은 홍당무였을 것이다. 사무실이 돌아와 다시는 판사와 상대방 변호사에게 수모를 당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법원에서 분배농지 확정시기를 답변하지 못한 것은 농지 분배 받은 농가가 정부에 농지대금 상환을 다 납부한 다음 되는 것인지, 상환이 완료되고 등기를 분배농가에게 이전등기가 완료되었을 때 분배가 확정되는 것인지 아름아름하다 답변을 못 했다.
농지분배 확정시기를 농지개혁법 시행령 32조를 확인해 보니 위에서 생각했던 것이 모두 틀렸다. 농지분배는 전 농지에 대하여 부락 농지위원들이 소작농지(분배대상)와 자작농지(분배대상 제외농지)에 관계없이 필지별로 농지 소표를 작성하여 현지를 답사하고 분배대상 농지 대장을 만들어 읍·면에 보고하고 부락게시판에 14일간 공고를 하여도 이의신청이 없을 때 공고기간 완료와 동시에 분배농지로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때 받은 판사의 핀잔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며, 지금도 농지개혁법 시행령 32조의 분배 절차는 잊지 않고 있다. 소송업무를 5년간 담당하면서 법률공부를 많이 했다. 민법을 비롯하여 국유재산법, 귀속재산관리법, 등기법, 지적법 등과 농지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비롯하여 하급 법원의 판례까지 공부를 했다. 지정계 차석에서 민원이 많은 바로 그 자리의 지정계장이라는 행운을 얻었다. 내 공직 생활 중에서 법을 좀 아는 척하는 것도 국가소송 수행 5년의 기간이 나의 공직 생활의 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