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정상에는 이름 없는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자연석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표면을 손질해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이나 완전히 마멸되어 글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전혀 글자가 확인되지 않아 ‘몰자비’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파주시는 1986년 8월 17일 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하면서 감악산비로 명명했다.
최근 경향신문은 이 비석 탁본에서 글자의 흔적을 발견하였다고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라는 칼럼에서 밝혔다. 경향신문 2019.10.2일자 칼럼 내용중 글자를 발견 했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서예전문가인 손환일 박사(대전대 서화연구소 책임연구원)가 경기 감악산 정상(해발 675m)에 우뚝 서있는 감악산비에서 광(光), 벌(伐), 인(人)’ 등을 읽어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1999년 감악산 정상의 감악산비석에서 얻은 탁본 을 새삼스레 분석한 결과 가장 확실하게 보이는 글자를 기자에게 보내주었던 것이다. 손박사는 “도드라지게 구별되는 글자만 3개 찾은 것”이라면서 “10년간 묻어두었던 감악사비 탁본을 다시 꼼꼼히 들춰보아 글자를 더 읽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박사는 “판독 가능한 글자 중에는 ‘중(中)’자와 ‘김(金)’자도 있다”고 전했다. 이 판 독이 맞다면 획기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 문인 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조차 1666년(현종 9년) 이 비석을 친견한 뒤 ‘예부터 글자는 있었지만 판독할 수 없는 몰자비(沒字碑)’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손박사의 판독이 맞다면 이것은 ‘350년 만의 해독’이라 할 수 있으니 기념비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흥왕 혹은 진평왕순수비일 가능성이 짙 다는 점에서 이 비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 비석은 진흥왕(재위 540~576년) 혹은 진평왕(579~632)이 한강과 임진강 유역은 물론 함경도까지 영역을 넓힌 뒤 ‘척경(拓境)과 순행(巡行)을 기념’하기 위해 순수비를 세운 시기와 일치한다.”
이 칼럼에서는 진흥왕 또는 진평왕의 순수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감악산비의 건립 주체와 시기가 결정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석비는 문헌자료가 부족한 고대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대부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다. 따라서 파주시는 손환일 박사의 분석결과를 참고하여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감악산비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감악산비가 중국 당나라 장수인 ‘설인귀비’라고 불리면서 적성지역이 설인귀의 고향이라는 민간설화를 바로 잡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굳이 민간설화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닌 가짜 뉴스가 사실처럼 천년이 넘게 행사하는 것은 막아야 된다고 본다.
천년이 넘게 감악산비가 ‘설인귀비’로 알려 지게 된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통일 신라 이후 신라 귀족들이 설인귀를 감악산 산신으로 추앙하여 고구려인들의 유민의식을 버리게 하고 설인귀를 내세워 패전 공포감을 조성하여 옛 고구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없애려 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이런 정치적 전략은 고구려의 멸망이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반신라적인 감정을 완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권도경의 ‘설인귀 풍속신앙 전설의 서사구조적 특징과 전승의 역사적 변동 국면’에서 주장하고 있다.
지금도 적성지역 민간 설화에 의하면 설인귀는 칠중성(지금의 적성면)에서 태어나서 말을 타고 훈련을 하며 감악산을 누비고 무예를 닦았다는 내용이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다.
설인귀의 고향은 적성면 주월리 백옥봉(육계토성)이고 그의 용마가 났다는 율포리, 무예 훈련을 했다는 무건리와 설마치고개, 말발굽이 가장 많이 지나갔다는 마지리, 죽어서도 신으로 추앙되어 제사를 모신 감악산 정상부의 사당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 성종때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도 ‘감악산사는 민간에 전하기를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산신으로 삼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천년이 넘는동안 감악산비에 대한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으므로서 민간설화라는 가짜뉴스가 점점 확대 재생산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된것으로 보인다. 매스미디어가 발전된 현대에도 주류 매체에 따라 정보의 실체가 왜곡 또는 허위로 유포 되고 있으니 작은것 부터라도 바로 잡아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기상 이슈 파주이야기 편집자 파주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