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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경의선 이야기 1

보낸 사람 경의선

경의선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도로서 별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에 신설된 역 중심으로 도로와 상가가 생기면서 파주 지역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최근 일제시대에 건립된 금촌역사가 전철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역사를 고가철도로 이전하였다. 평상시 경의선의 파주 구간 역사자료를 정리하겠다고 미루다가 다른 역도 옛날 모습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보낸 사람 경의선

경의선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그 해 2월 21일 서울∼의주(499.3km) 간 군용철도 목적으로 군용철도감부에서 부설하였으며 나중에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 예하에 전속시켰다.

1906년 4월 3일 용산∼신의주간 철도가 완전 개통되었고 같은 해 9월 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4월 1일무터는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되었다.

그 당시 철도부설을 위해 일본은 농번기에 농민을 강제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징발하여 농촌은 공동화되었으며 1906년 5월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철도 지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집에 아홉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까지 개탄했다.

일본은 이런 침탈 이외도 당시 철도역 부지를 넓게 책정하여 그 일대의 조선 농민을 내 쫓은 후 일본인들에게 싼 값에 넘기고 철도역 주변에 새로운 도로와 관공서를 세워 교통중심지로 만들어 일본인들을 돈방석에 앉게 하였다.

파주의 경의선은 부설 당시 일산 다음 역으로 금촌역과 문산역, 현재 휴전선 근처의 장단역이 있었으며 1956년5월11일 교하읍 야당리에 금촌역 관리의 운정역과 1967년 9월 1일에 월롱면 위전리에 문산역 관리의 파주역이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설되었다.

파주역 개설 당시 위치 선정에 따른 주내면(현재 파주읍)과 월롱면 주민과의 대립이 치열하였다. 그런 중에 1965년 월롱면 위전리 주민 윤태영씨는 철로에 발을 묽고 런닝셔츠를 흔들어 기관차를 세우려다 실패하여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1926년 남한철도지도- 경의선

이렇게 양쪽 주민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자 월롱면 위전리와 파주읍 봉암리 주민 모두가 이용하기 불편한 중간 지점에 역사를 개설하게 되었다.그 후 1998년에 파주시가 예산을 부담하여 기존의 파주역을 폐쇄하고 월롱면 위전리 면사무소 앞에 월롱역과 파주읍 봉암리에 파주역을 각각 신설하게되었다.

1936년도 서울(당시 경성)행 열차는 장단에서 20:29분, 문산 20:49분, 금촌:21:00에 각각 출발하여 서울역에 21:50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며 1977년에는 문산발 서울행은 새벽5시 열차를 첫 차로 05:50분, 06:40분, 07:10분, 08:20분에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통근열차로 배차하였다. 그 시간 후에는 1시간 간격으로 배차하였으며 21:20분이 마지막 기차였다.

1960년대에 경의선 기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 농촌에서는 직접 경작한 농산물을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만큼 포장하여 아침 첫차를 타고 서울역과 용산 등에서 노점 판매하거나, 미군부대에서 불법으로 빼낸 미군물자 수송을 위해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불법으로 유출한 미군물자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의자 아래나 선반에 감추는 등의 다양한 행태가 유행한 시절도 있었다.

1960년대말 당시 학생들의 기차요금은 일반 버스보다 저렴하여 당시 자장면이 1그릇에 30원일때 학생 요금은 한 달에 200원 정도였으며 서울을 통학하는 학생들은 새벽에 아침을 먹고 버스나 도보로 역까지 와서 기차를 이용하였다.

경의선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6월 12일 운행이 중단되어 문산역이 종착역이 되었으며 철도중단점이라는 간판이 민족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철도 중단점을 임진각 관광지로 옮겨 관광객들이 기념촬영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그러나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진행되면서 1992년에는 남북 기본합의서에 남북철도 연결을 명시하였다.

2000년 7월 1차 남북장관급 회담때에는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그해 9월에 임진각에서 경의선 복원 기공식이 열렸다. 그 후 2002년 9월 경의선 연결공사가 착수되고 2003년 6월 군사분계선 철로가 연결되었으나 핵문제 등 북미 관계 악화로 무산되었다.

남북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5월 군사보장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운행이 중단된지 56년만에 열차를 시험운행 하였고 7개월 후 2007. 12. 11일에는 개성공단의 자재와 생산 물량의 수송을 위해 문산‐봉동간 화물열차 운행을 시작하므로서 경의선의 유럽 연결을 위한 첫 걸음을 나서게 되었다.

경의선 전철복선화 사업(용산~문산)은 서울의 북서부 위성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복선 및 전철화 하는 사업으로 2009년 6월 개통을 목표로 철로 공사를 마치고 현재 역사와 전기 등의 공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이 사업은 당초 2007년말 성산~문산(39.6㎞) 구간을 우선 개통해 대곡역에서 서울지하철 3호선, 성산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시킬 계획이었으나 고양시 구간의 지하화 요구로 지연되다가 2005년 지상화구간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기로 합의하고 다시 재착공에 들어 갔다.

전철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급행열차가 운행되어 서울구간 4개역, 고양파주 구간에 4개역에서 정차하고 문산~용산 까지는 약40분이 소요되며 6~8분 배차 간격으로 운행될 계획이어서 역사 주변이 아파트단지 등으로 집중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양시 지역의 일산역을 지나 파주 지역에서 처음 정차하는 운정역(雲井驛)은 행정구역상 교하읍 야당3리로서 옛날 이 지역에 샘이 잘 나오는 우물 아홉 개가 있어 구우물이라고 불려 왔었는데 구름우물로 잘 못 불려져 운정으로 역 명칭이 되었다고 하며 이 지역은 수렁 논과 우물이 많아 안개가 자욱하였다고 전해 온다.

현재 운정 역사는 한국전쟁 직후 건립되어 외관과 형태는 전형적인 옛날 역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증기 기관차 운행 시절 열차에 물을 공급하기위한 소규모 급수탑이 아직 남아 있다. 이 역사의 관리는 민간인에게 위탁되어 열차권 판매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지역 주변에는 상지석리와 와동리가 있고 고양시와 경계 부분에 위치하면서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2003년부터 교하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으며 내년 3월부터 입주하여 2013년 완공되면 8만세대 22만명 규모의 신도시로 10년전 파주시 규모의 도시가 추가로 생기게 될 것이다.

보낸 사람 경의선
보낸 사람 경의선

운정역에서 3.3km 북쪽으로 금릉역(金陵驛)이 있다. 금릉역이 위치한 곳은 금촌동 563‐1번지로서 역의 명칭인 금릉동은 이 곳에서 1km 이상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자연부락명인 새꽃마을(신화동,新花洞)으로 불려지고 있다.

보낸 사람 경의선

이 역은 금촌택지지구 조성에 따라 지역 주민의 교통 편의를 위해 2004년 10월 임시승강장을 신설하여 운영하다가 2007.10.1일부터 간이역으로 지정되어 한국철도유통 직원이 승차권 발매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금촌역(金村驛)은 금릉역에서 1.5km 북쪽 금촌동 329번지에 위치하며 1906. 4. 6 개소하였다가 지난 2008. 4. 17일에 고가철도로 이전하여 현대식 전철 역사로 바뀌었다. 현재 기존 역사는 철거되고 역광장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금촌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역사 개울 건너 북쪽 방향의 마을로서 원래 ‘새말’이었으나 철도부설 당시 일본인이 ‘쇠말’로 들어 금촌역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현재는 파주의 중심 지역으로 파주시청을 비롯한 중요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부대 주둔으로 경기가 활성화 되면서 고양시까지 관할하는 파주세무서가 있었다.

월롱역(月籠驛)은 금촌역에서 4.1km 북쪽 월롱면 위전리 355번지에 위치하며 1998.1.17 지금의 신역사로 개소하였다. 철도 역사 유치를 위해 1965. 8.10일 이 곳 주민 윤태영씨가 철로에서 사망한지 33년만에 월롱 역사가 신설된 곳이기도 하다.

보낸 사람 경의선

역사 주차광장 앞에는 작품명 “대한민국”이라는 태극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이 작품은 오석과 화강석으로 민족의 상징인 태극을 표현하여 한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월롱역은 통일로와 인접하고 인근에는 2006년 4월에 준공된 LG필립스(현재 LG디스플레이) 공장이1,697.5천㎡ (약50만평)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협력단지가 조성되면서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파주시에서는 금촌역과 월롱역 중간에 위치한 영태리 에드워드 미군부대 자리에 이대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이대역사를 신설하기 위해 타당성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월롱의 지명은 지대가 높다는 뜻의 ‘다락’이 ‘다랑’‐’다롱’‐’월롱’으로 음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월롱역에 위치한 위전리(蔿田里)는 마을 앞 문산천 주변에 갈대가 많이 있었는데 이 갈대를 베어 내고 마을을 만들었다하여 마을명칭이 되었다. 근처에 금강산랜드가 위치하여 사우나 및 골프 이용객이 많이 찾아 오고 있다.

보낸 사람 경의선
보낸 사람 경의선

<다음호에 계속, 2008. 6. 25 이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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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파주 경의선 이야기 1

  1. 감사합니다. 지역사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0~60년대에 경의선 문산-금촌-일산등에 무장공비들이 북한에서 임진강을 타고 잠입해서 습격하고 화물열차를 폭발시키는 공격등이 있었는데 혹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있으시면 얻고 싶습니다.

      1. 네. 그자료등 미디어자료는 많이 찾았는데 혹시 지역민들이 가진 경험이나 사진이 있는가 해서요. 기사에 나오지 않은 것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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