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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경의선 이야기 2

파주역(坡州驛)은 월롱역에서 2.3km 북쪽인 파주읍 봉암리 516‐3번지에 위치하며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이용 승객은 이지역의 봉암리 주민 보다는 2~3km 떨어진 파주읍사무소 소재지 인근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경의선 전철화 사업으로 추진되는 역사의 공사가 한창이며 이 역의 명칭도 봉암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보낸 사람 경의선

파주역이 위치한 봉암1리는 ‘주라이’또는‘주라위’‘줄아위’라고도 불리는 마을로서 근처에 있는 줄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마을 명칭이 ‘현암동’, ‘줄바위’로 불리기도 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봉현리와 현암리 이름을 따와서 봉암리(烽岩里)가 되었다.

문산역(汶山驛)은 파주역에서 4.5km 북쪽인 문산읍 문산리 17번지 위치하고 1906년부터 이용되던 역사는 2001년에 경의선 전철 복선화 사업에 맞추어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어졌다. 원래 문산역은 구도로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새 역사를 통일로 방향으로 조금 옮기면서 현재 역사 앞으로 시가지를 우회하는 4차선 도로가 신설되었다.

문산역 1층에는 다른 역에서 보기 힘든 TMO(Transportation movement office)라는 사무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이 TMO는 군병력 및 군수물자의 수송을 관리하는 곳으로 주로 휴가 장병이나 출장 군인에게 열차 이용을 안내하고 있다.

보낸 사람 경의선
보낸 사람 경의선

문산은 임진강과 연결되어 수운의 중심지로서 삼국시대에는 술이홀현과 서원군 원평도호부 청사가 선유리 문산동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며 사목리 포구를 통하여 장단을 왕래 하였었다.

그 후 임진강의 강 흐름이 변동되자 지금의 문산읍 하동(문산역 쪽은 문산상동으로 불렸다)에 포구를 설치하여 풍덕, 김포,강화,고랑포,연천,송도와 한양 등의 지역을 황포 돛배로 연결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문산이 발전되었고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파주군청이 소재했었다.

최근에는 월롱의 LCD산업단지와 연계한 첨단산업단지가 당동리에 64만1000㎡, 선유리에 131만2000㎡ 규모로 조성되고 대규모 아파트가 선유리에 집중적으로 건립되어 획기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다.

문산이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홍수가 나면 임진강으로 흙탕물이 내려가다 서해의 조수에 밀려 더러운 흙탕물이 이 곳에 산더미처럼 밀려왔다고 하여 문산(汶山)이라 하였으며 이지역을 문산개나 문산포라고도 불렸다. 이곳의 물맛은 서해 바닷물의 영향으로 짜고 맛이 없어 일제시대에는 물을 사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문산역사 주차광장 맞은 편 소공원에는 작은 기념조각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하단에 ‘이 지역은 ’99년, ’96년 2차례에 걸쳐 침수되었던 곳입니다.’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금속으로 조각된 상단의 초승달 모양은 수해와 연관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문산역 맞은 편 시가지는 철도부설 당시에 형성된 주택가 골목이 큰길에 이어져 있으며 아직 기와집으로 남아 있어 그 옛날의 번성하였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보낸 사람 경의선
보낸 사람 경의선

운천역(雲泉驛)은 2004. 10.31 문산역에서 북쪽으로 3,7km인 문산읍 운천리에 임시 승강장으로 신설되었으며 주변에 큰 마을이 없어 이용객은 많지 않다. 운천이라는 명칭은 산골짜기에 구름이 돌아가고 여러 곳에서 많은 샘이 솟아나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보낸 사람 경의선

임진강(臨津江)역은 2001. 9.30 운천역에서 2.3km 떨어진 문산읍 마정리에 신설되었고 남한에서 민간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경의선의 마지막 역이기도 하다.

이 역은 파주시가 운영하는 임진각 관광지와 인접하여 서울이나 일산에서 이 곳을 방문할 때 많이 이용하는 기차역이기도 하며 이 곳에서 민통선 안에 있는 도라산역을 왕복하는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임진강역 지붕 위로는 자유로 고가차도가 지나가고 있지만 승강장은 현대적이고 쾌적하게 지어져 마지막 역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승강장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임진강 철교가 있으나 군초소가 있어 민간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임진강이라는 명칭은 고구려때 임진강 지역이 진임성현(津臨城縣) 또는 오아홀(烏阿忽)로 표기되어 있고 신라 경덕왕때 임진현으로 바뀌면서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임진성이 있어 그 지명을 따서 임진강이라고 불린 것으로 생각되며, 백제시대 초기에는 임진강이 굽이가 많다고 하여 임진강 상류를 칠중하, 호로하로 삼국사기에 표기하고 있다.

임진강역 역사 옆에는 크기가 2미터나 되는 원형 화강석에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이라는 작품이 세워져 있다. 이 시와 임진강에서 불어 오는 강바람으로 인하여 이 곳이 휴전선과 인접한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시는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향한 ……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라면서 분단의 현실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보낸 사람 경의선
보낸 사람 경의선

도라산(都羅山)역은 경의선의 최북단역으로 임진강역에서 3.8km 떨어진 민간인통제구역 장단면 노상리 555번지 위치하고 2002. 4.11일에 신설되었다. 2002. 2.20일에는 미국의 조지 W.부시 대통령이 방문하였고 서울에서 56km, 평양에서 205km 거리에 있으며 이 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임진강역에서 승차권을 구입하고 헌병의 검문을 받아야 기차를 탈 수 있다.

도라산역 관광은 승강장과 역사 주변으로 제한되고 역 방문 기념 스탬프도 비치되어 있으며 제3땅굴과,도라산전망대, 통일촌, 허준선생묘를 운행하는 연계관광 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도라산의 명칭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의 송도를 찾아 항복하고 장단읍내 뒤 백학산 서맥령의 도라산(156m)에 암자를 짓고 머물면서 조석으로 신라의 도읍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불리워 졌다고 한다.

도라산역 1.6km 북쪽에 장단(長端)역이 있었으며 현재는 승강장에 설치된 경계석과 한국전쟁 당시 탈선된 장단증기 기관차가 50여년 동안 분단의 상징으로 있다가 2007년복원을 위해 문산읍 임진각 관광지에 옮겨 놓으면서 비워진 자리(37″54’15.59’N, 126″41 ‘33.68’E)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곳에 있던 장단 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 31일 개성을 출발, 서울로 달리던 중 공습으로 탈선하였고 객차 없이 길이 15m, 폭 3.5m, 높이 4m 크기인 화통만 남아 있었다. 도라산 OP를 찾는 방문객에게 분단의 상징으로 설명되었고 2004년 12월에 장단역사와 함께 근대문화재로 등록 되었다.

지금의 장단역사는 그 옛날 마을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름모를 잡초가 자라고 고라니가 때 없이 노닐고 있는 한적한 곳 이기도 하다. 7월의 태양이 뜨겁게 내려 쪼이는 이 곳을 보면 그 시절 기적소리가 때때로 들리는 착각이 든다.

보낸 사람 경의선

철도가 처음 운행되던 시대에는수송수단이 별로 없어 철도는 상당히 중요한 존재로 부각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있는 교가처럼 노선별로 철도가라는 것이 있었다. 작곡가와 시기는 미상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경의선가 25절 중에 파주 구간은 6절과 7절에서 파평산과 문산포구, 화석정 등이 소개되고 있다. 내용중에 죽립석은 광탄면 용미리의 석불입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하고 문산 포구에는 배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6.一山의 古陵을 멀리拜觀코 坡平山 竹立石 金村서 보아 순식간에 汶山驛 당도해보니 商船의 돛대가 浦口에 가득 7.臨津江 鐵橋越便 花石亭 거쳐 長端驛 잠간 쉬어 開城이르니 市街의 번화함과 物貨의 繁昌 경성을 떠난후로 第一이로다

경의선과 관련된 자료를 찿다가 우연히 ‘1937년 5월 파주군 금촌역앞 난장’이라는 제목의 흑백사진을 발견하였다. 배경에 있는 뒷 산이 많이 본 월롱산이고 논과 벌판 지나 가옥들은 새말이나 문산제일고 방향이라고 생각되었다.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금촌 시가지로 나갔으나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가려서 월롱산은 보이지 않았으며 고가철로에 입주한 금촌역에서도 시야가 제한되기는 마찬가지 였다.

보낸 사람 경의선

문산제일고 앞에서 본 월롱산은 배경 능선은 맞는 것 같았지만 가옥들이 있는 마을 뒷산이 사진과 달라 찾는 것을 포기 하였다. 흑백사진 자료가 사실이라면 현재 지형이 많이 바뀌어서 찾지 못한것이거나 아니면 사진 설명이 잘못 되었을 것이다.

경의선은 근대 역사의 산물로서 한일합방과 해방, 6.25전쟁, 미군주둔과 철수, 남북철도 연결 등 민족의 흥망성쇠와 함께 하면서 파주에서는 더욱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다. 문산과 금촌이 다른 지역보다 인구나 경제면에서 앞 설 수 있었던 것은 경의선 덕분일 것이다.

지금 파주시는 교하신도시와 LCD관련 첨단산업단지가 문산,월롱 등에 조성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신흥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경의선이 복선화되어 내년도 6월부터 전철이 6~8분 간격으로 운행되면 서울을 오가는 시민과 관광객의 핵심적인 교통수단으로서 파주를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경의선의 환영

 

들판과 강을 오고 간지

백년의 세월이 지난 경의선이지만

 

아직 조상의 피와 땀이 마르지 않은 철길로

시커면 연기를 내며 달려 가는 기차의 환영을 본다

 

이제 환영을 떨치고 헤어져야 할 그대이지만

그대의 어깨에 기대어 신의주까지 달려 보고 싶다.

<2008. 6.25 , 이기상>

보낸 사람 경의선

8 thoughts on “파주 경의선 이야기 2

    1. 귀중한 사진입니다. 다행이도 금촌역은 과거사진이 여러가지 발견되고 있으나 문산역 사진은 볼 수 없었던 사진입니다. 게시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파주이야기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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