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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도 없는데 사과하라고?

잘못도 없는데 사과하라고?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제47화-

파주 하나로 클럽을 방문한 박명근 의원(우측에서 두번째)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되고 국회는 해산되었고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유신헌법의 당위성을 주민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공무원은 물론, 사회단체장까지 총동원되었다.

낙자(樂字)와 용자(鏞字), 6촌 형님은 민선 읍·면장을 지내시고 농지개량 조합장을 하시어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파주군 공화당 부위원장으로 박명근 의원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데 큰 힘을 보탰다.

어느 날, 군청에 볼일이 있다며 내게 오셔서 박명근 의원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해야 합니까?”

“네가 유신헌법에 대한 주민설명을 하는 자리에서 국회도 해산되고 했으니, 박명근 의원이 힘도 없고 유신헌법이 통과되면 또 국회의원을 선출하는데 박명근 의원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니까, 박명근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며? 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가서 사실을 이야기하고 사과를 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말은 한 적도 없는데, 내가 왜, 무엇을 사과하란 말입니까?”

박명근 의원의 불같은 성질을 잘 알고 있는 6촌 형님은 사과를 해야 한다고 나를 독촉했다.

“그럼, 그런 말을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했는지 내용을 알아야 사과라도 할 테니, 형님이 대신 말이나 해주십시오. 대체 내가 언제 어디서 그런 말을 했는지.”

박 의원은 여기저기에 가는 곳마다 나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동면(지금 금촌1동) 손규화 관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박명근 의원이 금촌의 모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 내려와서 말씀을 드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식당으로 찾아갔다. 식사 중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식사가 끝나자 “유(You), 그럴 수가 있어?” 하고 큰소리로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박 의원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화를 내셔도 내셔야죠?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오히려 제가 더 섭섭합니다. 떠도는 소문은 다 믿으면서 내 말은 한 마디도 들어보지도 않고 화를 내시다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제가 파주를 떠나겠습니다.”

나 역시 양보 없이 박 의원의 말을 받아쳤다.

나는 박 의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있을 때 잘못했다고 하면 더 펄쩍뛰고 공무원이 자기 부하인 양 야단을 치는 분이었다. 뻗댈 것은 뻗대야 그의 화가 수그러진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다루니, 군청 과장들은 박 의원에게 보고할 사항이 있으면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숫자 보고는 일일이 계산기로 확인을 하고 만약 하나라도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큰일이 났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그렇게 잘하면 중앙부처에 가서 일하지 왜 군청에 있겠습니까?” 라고 농담 겸 진담을 말하곤 했다. 그날도 내가 강하게 반발하니까 슬그머니 대화를 다른 쪽으로 돌려 그날은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나중에 수소문을 하여 알아 보니, 나를 시기하는 사람이 박 의원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는 증인이 나타났고 나는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주변에는 나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여겼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였다. 자운서원을 정비하는데, 우리의 행정 착오로 자운서원 내 주민 28세대를 이전하는데 300만 원의 국비만 지원되었다. 부족한 예산 1,100만 원을 조병규 지사가 지원하여 가옥이전과 경내 정비문제가 마무리가 되었다. 조병규 지사를 비롯하여, 박명근 의원과 관내 기관장, 그리고 주민이 모인 가운데 자운서원 경내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식 준비는 시에서 하는데, 조병규 지시와 박명근 의원의 소파 두 개를 준비하고 나머지 기관장은 접는 의자로 준비했다. 도의 의전담당 계장인 서무계장이 현장 확인 차 와서 소파는 도지사 것 하나만 놓고 치우라는 것이었다.

“안 됩니다. 박명근 의원도 지사와 같이 소파를 놓아야 합니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서무계장은 오늘 행사의 주빈은 지사이기 때문에 지사님 이외는 모두 접는 의자로 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당신이 책임을 질 겁니까?”

나는 서무계장으로부터 책임지겠다는 다짐을 받고 소파를 숲 속에 감추느라고 애를 먹었다. 박 의원이 조금 늦게 도착해 접는 의자로 안내를 했더니, 안색이 달라졌다. 더구나 지역주민들이 함께 있는데 지사는 소파에 앉고 박 의원은 접는 의자에 앉는다는 것이 체면이 깎이는 일이어서 말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행사가 끝이 나고 우리가 사무실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박 의원이었다.

“유(You), 그럴 수가 있어? 주민 앞에서 창피를 주어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내무과장이 뭐하는 거야?”

박 의원은 전화로 호통을 쳤다.

“저로서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경기도에서 시키는 대로 하였을 뿐인데, 저한테 왜 야단을 치십니까? 야단은 경기도에 하세요!”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하며 책임이 없다는 것을 항변했고 박 의원은 내무부와 동료 의원들에게 “경기도지사는 국회의원을 무시하고 예의도 모르는 자”라고 떠들었다. 조병규 지사는 우광선 군수에게 박 의원을 자제시키라고 지시하였으나, 군수도 박 의원에게 한 번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계속 만류할 수는 없었다. 도의 공보실장과 내무국장이 남산에 있는 공화당 정책위 부의장인 박 의원을 찾아가 사과를 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사와 화해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박 의원은 중앙부처에 계속 여론을 퍼뜨렸다. 지사는 파주군수가 박 의원 하나 설득 못한다고 화가 나 있었다.

팔당저수지 개통식이 있던 날, 지사와 박 의원이 만나 어렵게 반도호텔에서 양자가 직접 화해를 해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우광선 파주군수는 결국 양평군수로 전보되었다.

 

<자료파일 제공  도서출판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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