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 views

한 잎의 여자

-인송-

그녀가 죽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일주일만이라 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아주 낡고 색이 바랜 한복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왜 낡은 한복을 입고 있었는지 모두들 궁금해했지만 나는 알것 같다. 그 한복의 의미를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가을 시골집에 갔다오는 버스안에서 였다.

나를보고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내가 먼저 아는척 했고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둘을 데리고 친정집에 살고 있으며 시내의 한 갈비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횡포가 심해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참 많이 변한것과  뭔가 불안정해 보이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그녀가 내게 보여 주었던 한 장의 사진을 떠올려 본다.  붉고 푸른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며 환하게 웃던 사진속의 그녀 얼굴을….

웟 동네에 사는 작은집 문간방에 세들어 이사온 여자아이가 우리반으로 전학을 왔다.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그해 나는 3등까지 주는 우등상을 타지 못했다.  그녀가 2등을 했다.

선생님들은 그녀를 예쁜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집 큰딸인 그녀는 중학 진학을 포기하고 옷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내자리를 만들어 놓을테니 학교를 졸업하면 그곳으로 오라고 했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집 툇마루에 누워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깔깔 거리던 그날을. 그녀는 공장으로 나는 학교로 우리 둘은 자연스레 그렇게 멀어졌다 몇년후 그녀는 야간 중학을 졸입하고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학교 졸업후 몇 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다 집에서 놀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도 그때 집에서 놀고 있었다. 실업자인 우리 둘은 거의 매일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당시 그녀는 자기가 졸업한 학교의 선생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그 남자의 아버지가 한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란 말도 했었다.

학교 행사나 환경정리 같은것을 함께 준비하면서 그남자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체육대회때 부채춤을 추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내게 보여주면서 행복해 했었다. 사진속의 그녀는 예뻤다 작고 초라한 집이였지만 그녀는 그를 자기집으로 초대했고 난 그때 그를 처음 봤다.

그녀 집에서 몇번 본 그남자는 순하고 착해 보였다. 그녀 방에 도배를 하면서 둘이 장난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는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녀와 나는 영화 전시회 고궁 서점등을 자주 다녔는데 미술을 전공한 그녀의 남자친구가 영화를 좋아 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변하지 않을것 같았던 그 둘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건 그 남자가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그가 군대를 간사이 그녀가 맘에 들지않았던 그남자의 부모가 그 둘을 떼어 놓기로 작정을 한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시도때도 없이 그녀를 집으로 불러 집안 일을 시키고 모욕을 주고 그의 아버지는 교육을시킨다고 이상한것들을 시키고 너의부모는 얼마나 무능하면 딸자식 학교도 보내지 못했냐는  말로그녀의 가슴에 못을박았다.

그의 집에 갔다온 저녁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한숨과 함께 하소연을 했다. 내 나름대로의 위로를 한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기다렸다 그남자가  제대하기만을 … 그리고 그의 부모들이 이겼다.

그남자가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때 그녀는 이별을 통보했다. 그날 그녀는 나를 찾아와 한참을 울었다. 너무도 아무렇치않게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그 남자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듯했다.  그녀와 함께 남산을 올라 갔고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이틀쯤 머물렀고 영화를 몇편 보고 다리가 아프도록 걸었다.

그녀를 그렇게 위로했다. 얼마후 나는 취직을 했고 집이 멀다는 핑계로 자취하는 친구집으로 들어갔다. 서울생활을 시작한지 몇달후 결혼을 한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언니 결혼식에 갔다 만난 6살 많은 남자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는게 뭐그리 특별하겠냐고 그녀는 그렇게 결혼을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실망을했고 결혼식에는 가지않았다. 그녀와 그렇게 멀어졌다. 가끔 그녀의 소식은 시골 엄마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하나 낳았다는 것과 넉넉하게 사는것 같지 않더라는 것 등등..

몇년이 지났고 어느해 겨울 집에 내려간 내게 엄마가 말씀하셨다 며칠전 아주 추운 늦은밤 누가 대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그녀가 나를 찾더라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녀의 말투와 행동이 좀이상했는데 더이해할 수 없는건 영하10도 가 넘는  추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한복만 입고 있었다는 것이였다.

다음날 내가 그녀의 집을 찾았을때 그녀는 그곳에없었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후였다. 그녀 엄마의 한숨과 내가 들은 그녀의 결혼생활은 충격이였다.

이유없이 폭력을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는 말씀과 어려운 집안 형편에 아픈 딸과 그녀의 아이를 떠맞게 될까 걱정을 하고 계셨다. 이혼을 시키는게 낫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나에게 이혼만은 막고 싶어하는것 같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녀의 남편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시는것 같았다.  난 말없이 그녀의 집을나왔다.  그날 이후 난 내생활속으로 돌아 왔고 그녀를 잊었다.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을때 그녀는 내가 다니는 회사근처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몇번 만났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없다. 말이없던 그녀가 더욱더 말이 없어진 것과 옛날보다 더말라 있었다는것 사실. 그당시 그녀가 전화를 걸어오면 귀찮은 마음이였다. 아까운 점심시간을 말이없는그녀와 회사앞 공원에서 보내는것이 그리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사생활은 이미 나의 관심 밖이되버렸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 두면서 나는 그녀에게 아이가 하나더 생겼다는것을 알았고 그녀와 그렇게 멀어졌다 .

시골에 내려 와서도 그녀의 소식을 묻거나 그녀의 친정집에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잘살기를 바랬고 어릴적 고향친구라는것이 그런것처럼 애뜻한 정이 있으면서도 보지않으면 그럭저럭 잊혀지는 그녀를 잊고 그렇게살았다.

십년쯤 지났을까.  꽃꽂이 강의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꽃꽂이를 배우고 있는 그녀를 다시만났다.  그녀의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들 상대로 커튼이나 방석등을 만들어 주는 부업도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렇게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녀와 가끔 만나 차를 마셨다.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많이했다. 옛날에 봤던 영화 남산 친구집에서의 이틀 마치 며칠전의 일처럼. 처음으로 자기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결혼초 남편과의 불화 거칠고 폭력적인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심했던 구타의 공포 이혼의 위기 너무도  담담하게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그녀는 변해 있었다.

지금의 삶을 포기라고했다. 아이들 때문에 사는 아이들이 사는 이유라는 그녀의말은 너무가슴이아팠다. 그녀와 초등학교 동창모임에도 한번 갔고 그녀의 집에도 갔었다.

그녀의 남편은 없었고 아이들은 엄마를 닮아 예뻤다 서로에게 안부 전화를 몇번 했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은 까닭에 또 그렇게 멀어졌다. 그리고 작년 가을 그날 버스안에서의 만남이 그녀와의 마지막이였다.

그녀가 마지막에 입고 있었다던 낡은 한복 그 오랜기간 그것을 간직했던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그때 헤어진 그남자를 잊지 못해서 아닐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살아온 날들중 그때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였을까라는 추측을해본다.

그때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지금까지 그 끈을놓치못했을지모른다. 누구나 사는동안 잊지못한 버릴수없는 추억하나쯤 간직하고 가끔 그리워하면서 사는것처럼…… 난그녀를 생각하면 언제나 이 시가 떠오른다.

“나는 한여자를사랑했네
물푸레 나무 한잎같이 쬐끄만여자
그한잎의 여자를사랑했네
물푸레 나무 그 한잎의숨결
그 한잎의 맑음 그 한잎의영혼
그한잎의눈 그리고 바람이불면
보일듯 보일듯한 그한잎의
순결과자유를 사랑했네 “